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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8일 명상의 시간입니다.
작성자임은선 이메일[메일보내기] 작성일2019/12/18 10:12 조회수: 53

요즘 즐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슈가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추억의 가수를 다시 소환하는 프로그램인데요 10대인 여러분에게는 생소한 가수들, 노래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들어보면 십 년이 훌쩍 지난 노래지만 요즘 듣기에 좋은 곡이 많습니다. 
또 음악과 관련된 프로그램들을 보다보면 가수는 알고 있었지만 그 가수한테 그렇게 좋은 곡이 있었는지 몰랐던 숨은 명곡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숨은 명곡. 이 말은 말 그대로 명곡이지만 단지 그동안은 그 진가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뒤늦게나마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 숨은 명곡들은 보면 괜히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당장은 빛을 보지 못하는 나의 가치도 언젠가는 인정받게 될 희망도 생깁니다. 잘 보이진 않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빛나고 있을 별! 우리도 분명 다 그런 별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빛나는 점이 있다는 것. 시점의 차이일 뿐 여러분은 모두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오늘도 자신만의 빛을 밝혀나가는 살레시안의 하루를 기대해봅니다. 12월 18일 수요일 아침 시작합니다. 



수요일 성무감 신부님 명상

 2019년 멋진 살레시안과 만나는 서른두 번째 아침 명상입니다. 
 '13', 현재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13'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우리가 열심히 살아온 2019년의 남은 일수를 의미합니다. '7', 현재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7'이라는 숫자는 예수님의 탄생이 '7'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의미입니다.
 24일 우리는 아침 시간 예수님의 탄생을 미리 기뻐하며 성탄 행사를 하고 일찍 귀가하여 오후 시간을 작년과 비슷하게, 또 매년 살아왔던 그 모양새대로 그렇게 또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삶의 전환점을 맞는 순간 '의미 있는 삶'에 대한 물음을 던집니다.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의미'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전환점에서 찾아야 할 의미는 바로 '내 삶으로부터의 분리'입니다. 즉 똑같은 장소, 똑같은 시간을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을 살아가지만, 내가 살아왔던 삶의 모양새에서 벗어나 지금 살아가는 곳이 처음인 것처럼, 지금의 이 시간이 오직 나에게만 주어진 시간인 것처럼 그렇게 다른 사람의 모습처럼 살아가는 것에서 '의미'는 찾아진다고 누군가는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될 때 지난 삶이 진짜 철없던 철부지의 삶임을 깨닫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삶의 성숙, 성장의 순간에는 분명 깨달음과 변화는 반드시 필요한 필수조건인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12월 24일 이브, 12월 25일은 작년에도 살아온 시간이고, 그 전에도 살아온 숫자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올해도 우리에게 순식간에 다가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시간. 내년에도 그럴 것이고, 내 후년에도 그럴 것입니다. 그렇게 막연하게 주어지는 12월 25일의 뜻깊은 성탄은 그저 나에게 빨간 날, 하루 쉬어가는 '징검다리'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탄절'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 날입니다. 우리가 알아봐주지도 않지만, 우리가 귀여겨 들어주지도 않고, 그날이 진짜 의미 있는 날이라고 여기지도 않지만, 성탄절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닙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선물 나눔과 맛있는 케익, 좀 더 나은 음식들을 서로 나누지만 그 날의 진정한 의미는 사라지고, 사라져 버려 그저 빨간날이라는 휴일의 의미만을 남겼습니다. 

 눈을 감아보세요. 그리고 상상하며 잘 들어보세요. 2000여년 전 12월 24일 그 날 밤. 삶의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나귀에 눕혀서 여관방을 찾는 다급함의 소리를 말입니다. 곧 이루어질 출산의 고통을 안고 있는 여인의 외침과 방을 구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간절함이 가득 담긴 발걸음 소리를 말입니다. 그리고는 결국 말의 밥 그릇을 겨우 치워내고 짚을 깔며 수건을 얹는 그 소리를, 그 소리 옆에서 마지막 산고를 치러내는 여인의 소리를 상상해보세요. 그렇게 버려지듯, 잊혀지듯 성탄은 시작되었습니다. 매우 쉽게 잊혀져버리게 말입니다. 하지만 이 성탄은 우리를 위한 최고의 기쁨의 소식입니다. 
 백화점의 찬란한 트리와 메리크리스마스라 소리치는 산타클로스의 외침, 여기저기서 들리는 폭탄 세일과 할인 행사들,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시끄럽게 흘려나오는 캐롤들. 그 어느 곳엗 예수님의 자리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쉽게 잊혀져 버리는 자리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셨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찾아주었다. 바로 어느 누군가가 굶주림에 허덕일 때, 목마름에 목을 잡을 때, 헐벗어 추위에 떨 때, 병들어 병의 고통 속에 있을 때, 갇혀지낸자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 사람들 속에 아기 예수님은 탄생하십니다. 그곳이 바로 성탄의 자리이자 중심입니다. 
 2019년 성탄절은 지난 시간들처럼 보내지 마시고, 가난한 이웃, 힘들어하는 이웃 가운데에 계시는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들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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